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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위의 한시 사랑방] 雪夜吟成示張生(설야음성시장생)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6-01-15 16:24:28
  • 수정 2026-01-15 17: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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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은이-張維(장유)

강성위(중어중문학 박사)


今年冬暖甚(금년동난심)
竟月雨濛濛(경월우몽몽)
忽作中宵雪(홀작중소설)
仍號大塊風(잉호대괴풍)
閉門雙鬢白(폐문쌍빈백)
擁褐一燈紅(옹갈일등홍)
却憶西齋客(각억서재객)
幽懷與我同(유회여아동)


[주석]

· 雪夜(설야) : 눈 내리는 밤, 눈 온 밤. / 吟成(음성) : 시가 완성되다, 시를 짓다. / 示張生(시장생) : 장생에게 보여 주다. 장생은 장씨 성을 가진 선비를 가리킨다.

· 張維(장유,1587~1638) :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 또는 묵소(默所),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공을 세웠고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임금을 수행하여 우의정에 이르렀다. 특히 문장에 뛰어났으며, 저서에 『계곡집(谿谷集)』, 『계곡만필(谿谷漫筆)』 등이 있다.

· 今年(금년) : 금년, 올해. / 冬暖甚(동난심) : 겨울이 유난히 따스하다.

· 竟月(경월) : 한 달을 다 보내다, 한 달이 다 되다. / 雨(우) : 비. / 濛濛(몽몽) : (비나 안개 등이) 자욱한 모양, 부슬부슬.

· 忽(홀) : 문득, 갑자기. / 作(작) : ~이 지어지다, ~이 생기다. / 中宵(중소) : 한밤중, 깊은 밤. / 雪(설) : 눈.

· 仍(잉) : 이에, 거듭, 이어서. / 號(호) : 부르짖다, 울부짖다. / 大塊(대괴) : 대지(大地), 땅. / 風(풍) : 바람.

· 閉門(폐문) : 문을 닫다, 닫힌 문. / 雙鬢白(쌍빈백) : 양쪽 살쩍이 희다.

· 擁褐(옹갈) : 베옷이나 누더기를 껴안다. / 一燈紅(일등홍) : 등불 하나가 붉다.

· 却(각) : 문득, 불현듯. / 憶(억) : 생각하다, 생각나다. / 西齋(서재) : 성균관(成均館)이나 향교(鄕校)의 명륜당(明倫堂) 서쪽에 있었던 집으로 유생(儒生)들이 거처하고 공부하던 곳을 가리킨다. 그러나 단순히 서쪽에 위치한 집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 客(객) : 객, 손님.

· 幽懷(유회) : 그윽한 회포. / 與我同(여아동) : 나와 같다. ‘與’는 ‘~와, ~과’라는 뜻을 갖는 개사(介詞)이다.


[강성위 번역]

눈 내리는 밤에 시를 지어 장 선비에게 보여 주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따스하여

한 달이 다 되도록 비만 부슬부슬

문득 한밤중에 눈이 내리더니

이어 대지에 바람까지 울부짖네

문을 닫은 방엔 양쪽 살쩍이 흰 사람,

붉은 외 등 앞에 누더기 껴안고 앉았네

서재에 묵는 객이 불현듯 생각나는 건

그윽한 회포가 나와 같을까 싶어서지

 

[한역노트]

옛 사람들이 생각한 겨울의 기점은 입동(立冬)이었다. 이 입동으로부터 “한 달이 다 되도록”이라고 한다면 대설(大雪)을 얼마 앞둔 시기가 된다. 대설은 대개 양력 12월 7일이거나 8일이므로 이 시는 12월 초 어느 날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설(小雪)을 지나 대설이 다 되도록 눈은 내리지 않고 비만 부슬부슬 내렸다고 했으니, 장유(張維) 선생이 이 시를 짓던 해 초겨울은 유난히 포근했고, 이 시를 짓던 날 내렸던 눈은 그 해 첫눈이었다는 뜻이 된다. 옛 사람들이야 첫눈이라 해서 요즘 사람처럼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내심 기다렸을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반기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그런 기다림과 반가움 속에서 지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날 그 첫눈은 대낮이 아니라 밤중에 내렸다. 더욱이 대지(大地)에 소리를 내지르는 바람까지 동반하였으니 첫눈치고는 상당히 을씨년스런 풍경을 연출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시인이 궁상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제6구의 내용으로 보아, 현재 시인의 처소에는 눈 내리는 밤을 함께 할 사람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또 제5구를 작성하며 문밖의 눈 빛깔과 자신의 귀밑머리 빛깔이 ‘같음’을 인식하게 되었을 시인은 얼마간 허허로움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눈이 내리는 밤중에 혼자서는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리하여 시인은 그리 따스하지도 않은 방인지라 이불이거나 옷가지 같은 것을 껴안고 등불 앞에 앉아 시를 짓기 시작했을 것이다. 방안에 하나 있었던 붉은 등불도 그다지 밝았을 것 같지 않다. 다소 썰렁함이 느껴지는 사랑방 안, 가뭇거리는 등불 앞에 앉아 생각에 골몰하며 시를 적어가고 있는 시인의 모습은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풍속도(風俗圖)로 투사(投射)된다.


어떻게 시는 얼추 완성되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는 혼자 만들어 놓고 혼자 감상하기에는 그다지 재미가 없는 물건이다. 이쯤에서 생각을 나눌 만한 상대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바로 그 내용을 담아 시를 갈무리한 시인은, 머슴 아이를 시켜 서재(西齋)에 묵고 있는 객에게 시를 보내며 건너오라는 전갈도 곁들였을 것이다. 시를 받아 든 그 객이야 건너오라는 전갈이 따로 없었다 하더라도 시를 들고 부리나케 건너왔을 터이다. 그런 것이 말하자면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였다.


풍류를 즐기는 자리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술이다. 그러므로 장유 선생이 술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 손 치더라도 ‘그윽한 회포’라는 말 속에는 이미 술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술이라는 말 뒤에는 ‘담소’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따라붙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얘기한 ‘그윽한 회포’는 담소를 곁들여 술을 마시며 눈 내리는 겨울밤의 풍류를 즐겨보자는 것이 된다.


장유 선생으로부터 이 시를 받았을 장생(張生), 곧 장 선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는 듯하다. 친척이었다면 그 사실을 제목이나 자주(自注)에서 밝혔을 법한데, 그러지 않은 것을 보면 친척은 아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벼슬을 하고 있었던 사람으로 보기도 어렵다. 관직에 있는 자라면 제목 등에서 이를 밝히는 것이 그 시절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상대의 성씨 뒤에 ‘생’자만 붙여 ‘장생’으로 호칭한 것으로 보아 장유 선생과는 연배가 상당히 차이가 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시인이 그날 밤에 장생을 떠올렸던 것은, 장생과는 모종의 공감대 같은 것이 앞서 이미 형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아닌 밤중에 장유 선생으로부터 ‘찜’을 당한 그 장생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어쩌면 장유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있었던 문하생일 공산이 크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훗날 역자가 저세상으로 가서 혹시라도 장유 선생을 뵐 기회가 생긴다면 꼭 여쭈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역자가 그 장생과 같은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눈 내리는 겨울밤에 불러주는 건 고사하고 전화라도 해주는 벗이 있다면 좋으련만, 밤 9시만 넘어도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보니, 그 옛날과 같은 풍류에 대한 기대는 애 저녁에 접어두기로 하였다. 새삼스레 느끼는 거지만 요즘에는 풍류의 쏘시개가 될 수도 있는 그 눈마저 정말로 드물다. 환갑 진갑 다 지난 이 나이에도 여전히 눈이 그리워지니, 눈은 무슨 향수(鄕愁)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역자가 나이 50 어간에 재미삼아 지어본 시 한 수를, 긴긴 겨울밤 파적거리로 삼아보시기 바란다.

오늘 역자가 소개한 장유 선생의 시는 오언율시(五言律詩)로 압운자는 ‘濛(몽)’, ‘風(풍)’, ‘紅(홍)’, ‘同(동)’이다.

待雪戱作(대설희작) 눈을 기다리며 재미삼아 짓다

自嬰歡雪天(자영환설천) 아이 적부터 눈 내리는 날 좋아했는데
半百情猶隱(반백정유은) 나이 오십에도 정 여전히 은은하여라.
仙女罷工非(선녀파공비) 선녀들이 파업을 하는 것일까?
今時稀餠粉(금시희병분) 요사이 떡가루가 드문 걸 보면.

* 餠粉喩雪語見童謠눈(병분유설어현동요눈)
* 떡 가루는 눈을 비유한다. 말이 동요「눈」에 보인다. ―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하얀 가루 떡 가루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강성위 박사 약력]

강 박사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중국어문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책임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에 출강하여 한시(漢詩) 창작과 번역을 지도하고 있다. 30여 권의 저서와 역서가 있으며, 창작 시집으로 ≪술다리[酒橋]≫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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