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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30대 후반의 호기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5-10-07 11:18:58
  • 수정 2025-10-08 1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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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시인)

나의 30대 후반엔 서울시 은평구 불광중학교 학생들에게 3년간 매주 토요일 1시간(1990년대 그 시절은 토요일도 등교하던 때였다) 시 창작 수업을 해 주고, 국가에서 매년 700만 원씩, 3년 총 2,100만 원을 받아, 그 자리에서 도장을 찍어, 이 학교에 전액 발전기금으로 기부를 했다.


반듯하게 사시는 나의 족친 몇 분은 해마다 지금까지 고향 모교에 매년 몇천만 원씩 모아서 몇 억을 장학금으로 내놓으시는 분도 계시는데, 그에 비하면 나의 이 금액은 그다지 크지도 않지만, 자잘하게 몇 군데 후원금을 보내고 있었던 젊은 30대 후반인 나에게는 그 당시 가장 큰 기부액이었다.


나와 같이 기부를 해 주신 분은 그 시절 방송국에서 상당히 알려졌던 MC 및 방송인(박경호 씨로 기억함)이 한 분이 계시는데, 방송반을 맡아 특강해 주시고, 나와 같은 날에 같이 전액을 기부하셨다. 그분과 나는 학부모 육성위원으로 먼저 선발이 되어 있었던 터였다. 나머지  우리와 같이 다른 과목 외래 특강 강사님들은 여러분이 계셨지만, 학부모가 아니라서 받은 강사비는 집으로 가지고 가셨다.

 

1년을 지도하고 가을에 시화 전시회를 할 때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은 나의 주머니를 털어서 시화 제작 비용을 감당했고, 물론 3년 동안 종로구에 살면서 은평구까지 강의를 위해 달려가는 차 기름 값도 내가 감당하였다.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 발목이 잡히니, 다른데 매일 출근하여야 하는 곳으로 좋은 섭외가 와도 책임감 때문에 중간에 빠져서 갈 수가 없었다. 그 덕분에 천상 집으로 찾아오는 고교생 몇몇 개인 논술 지도만 하면서 모처럼 거의 쉬는 기간이 되다시피 했다. 학교 강의가 발목이 잡히니 1년만 하고 그만두려 했더니, 교장 선생님께서 절대 안 된다고 그러시지 말라며, 꼭 한 번 더, 그리고 또 꼭 1년 더, 하셔서 우리 큰 딸이 졸업하는 때까지 맡아서 하여 3년을 채우게 되었다.

  

문예반 학생 중에 가난해서 밥을 못 먹는 여자아이가 있다고 딸이 알려주어서 듣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매월 30만 원씩(우리 딸 한 달 용돈 3만 원이던 시절) 후원해 주기도 했다. 이 학생 이야기는 예전에 사연을 언급한 바 있어서 언급을 생략한다. 

  

한창 돈을 향해 달려가던 나이에 잠시 몇 해 이렇게 사는 나를 놓고, 집안에선 세상 물정에 어둡고, 딴 세계의 사람처럼 산다고 한 소리 했다. 밥이야 먹고 살지만, 내가 크게 여윳돈 형편이 넉넉한 사람이 아니었던 터라, 내 형제 부모가 볼 땐 이해가 안 가는 생활 방식이었으나, 나는 지금도 그 일이 자랑스럽고, 인생 잘 살았다고 생각을 한다. 


세상 사는 것이 어떤 곳인지 세상 살이 못 보러 태어나, 악착같이 돈 나오는 구멍만 팠더라면, 이 나이에 와서 가슴이 얼마나 헛헛할 것인가 싶다.

 

한참 지난 뒤에 돌아보니 남들보다 돈 계산에는 좀 더 어리숙하게 살았던 그것만이 복을 만드는 길이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시인으로 산 것 같아, 문학인으로 살아가는 나의 체면을 조금 세워주는 것 같다.

 

인생이 뜻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한창 꿈을 꿀 때 계획했던 것들 다 이루지 못한 이즈음에 서서,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날도 있다. 그러다가도 조금의 위로가 되는 부분은, 남이 보면 허세처럼 보일 만큼, 세상과 함께, 사람들과 함께 살고자 했던 봉사와 어울림의 날들이 있었기에 스스로 위로가 되었다. 3년이란 시간과 열정을 바친 것을 더 뿌듯하게 생각 느끼고, 스스로 일으켜 세우는 마음의 디딤돌이 되어주곤 한다. 


칭찬은 꼭 남이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자신이 하는 칭찬도 좋은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 같다. 이런 일을 어디에 자랑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것 같아질까 봐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으나, 세월도 많이 흘러 30여 년 전 일이 되었고, 자식들이야 다 아는 일이지만, 인생 뒤돌아보면서 나의 삶이 손주들이 읽어 보고 배우게 될지 몰라 글로 남겨둬 본다. 


개인주의가 날로 심각해지는 이 즈음에, 이 글이 조금이나마 사회에 선한 영향력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도 담아 공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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