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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 칼럼] 허수아비의 변신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5-09-20 23:15:25
  • 수정 2025-09-20 2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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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칼럼니스트. 박약회 운영위원)소싯적 들판의 허수아비는 남루한 몰골이었다. 짚이나 헌 옷으로 만들어 멀리서 보면 사람같이 보여 순진하던 참새나 짐승이 피했다고 한다.


논밭의 곡식은 주로 참새가, 추수한 집안의 곡식은 쥐가 축을 냈다. 


쥐잡기 운동이 학교마다 있었다. 쥐꼬리를 학교에 제출했다.


친구는 쥐꼬리 대신 오징어의 긴 다리에 재를 묻혀서 제출했다가 선생님께 혼이 나기도 했었다. 오징어는 귀했는데 아마 제사를 지내고 나서 오징어 다리를 하나 떼었다는 생각이 든다.


못 살던 시대의 허수아비는 차림새조차 초라한 형색이었다. 지금은 허수아비를 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허수아비의 의상이나 모자의 색채도 요란하고 고급스러워졌다. 요즘 참새는 워낙 머리가 좋아져서 가짜인 허수아비를 알아차린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하면서 걷는데 참새가 모를 턱이 없다는 것이다.


어릴적 초가지붕의 추녀 끝 구멍에서 잠자고 있는 참새를 잡아서 구워 먹던 추억이 선하다. 낮에는 산태미를 세워서 그안에 먹이를 두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지 않듯, 먹이를 먹으려고 들어 오면 줄을 당겨서 잡은 기억도 있다. 


손을 넣어서 참새를 꺼내는데 잘못하면 놓치고 만다. 다잡은 참새를 실수로 그만 날려 보낸 기억도 있다.


누렇게 익은 들녘에 참새가 극성을 부렸다. 참새를 쫒기위해 세운 허수아비는 이제 아련한 추억 속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허수아비는 안동방언으로 '히재비'라 불렀다. 농(弄)으로는 '허수의 부친'이라고도 하였다.


지나간 것은 모두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허수아비도 기억 속에 그나마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쌀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쌀의 재고가 있다고 북에다 퍼다 주는 객기를 부리기도 했다. 보관하기가 힘든다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다. 세계는 식량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참새가 웃을 짓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머니 세대가 벼 낱알을 줍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필자는 어려서부터 근검을 익혔던 셈이다.


메뚜기도 제철이 있듯이 지금은 허수아비의 시즌이다. 양팔을 벌리고 수고하는 허수아비의 모습이 익살스럽긴 하다.


수천 년을 함께 해온 우리의 문화이기에 허수아비는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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