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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 칼럼] 꽃처럼 피어난 청계천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5-09-14 11:01:49
  • 수정 2025-09-14 1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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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칼럼니스트. 사단법인 박약회 운영위원)

청계천은 본래 맑은 물이 흘러서 청계천(靑溪川)이라 하였다. 역사적 이야기거리가 많은 곳이다. 


60년대는 박스로 된 집과 판자집이 주변에 즐비하였고 염색물과 오물로 냄새조차 지독하였다. 필자는 60년대 고교 진학을 위하여 상경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공장생활을 짧게 한 바 있었다.


당시에 공장이 제법 컸으며 종암동 옛 서울상대 인근에 있었다. 휴일이면 청계천을 거쳐서 장충체육관 부근에 있는 형님댁을 찾았다.


참으로 못 살던 시대의 아픔을 청계천이 보여 주고 있었다. 하기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빈곤하였던 나라였으니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복개된 청계천이 헐리고 22개의 다리가 세워져 있다. 필자는 특히 영도교(永渡橋)에 관심이 끌렸다.


공교롭게도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그리고 장충단 공원으로 옮긴 수표교도 자주 들러 보고 있다. 흐르는 물의 양을 측정한 다리였다.


처음에는 단종과 정순왕후의 '영원한 이별 다리'라 하여 '영리교'라 불리기도 했지만 성종 때 보수하여 영도교(永渡橋)라 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단종과 그의 비 정순왕후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이별을 했던 슬픔을 남긴 다리였다. 정순왕후는 이곳까지 나와서 단종과 이별의 아픔을 나누었다고 하니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단종은 영월에서 그해 17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했지만 정순왕후는 82세까지 사셨으니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가장 단명한 임금인데 왕비는 가장 장수를 하였으니.....


단종이 영월로 귀양을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은 청룡사의 우화루(雨花樓)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계천은 이명박 정부 때 건설 전문가답게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하게 만든 것이다. 참으로 귀한 곳이다. 좌경 정부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청계천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4대강 보(洑)의 혜택이 실로 엄청난데도 이를 해체한다고 지금도 억지를 부리고 있다. 청개구리 삼신이 걸리어 정책이라고는 돈을 퍼붓기만 하니 나라살림이 거덜 날 지경에 처해져 있다.


청계천은 맑은 공기에 주변의 습도를 조절하여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고 있다. 좌경 정부는 버스차선 전용도로는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물론 한강에 다리 하나 건설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필자는 청계천에 자주 가는 편이다.  주민들을 이주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과 설득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세느강을 비롯하여 세계의 여러 강을 보았지만 한강처럼 넓고 수량이 풍부한 강을 본 적이 없다. 한강은 명경지수로 호수같다.


모든 다리도 대교(大橋)이다. 그랜드 브리지다. 그리고 청계천처럼 아름답게 흐르는 개천이 어디에 있는가?  왜가리, 백로, 고니도 살고 물고기도 헤엄친다. 일급수에만 산다는 쉬리도 있다.


다만 인공하천으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청계천은 걷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데이트족도 무진 많다. 반듯한 돌로 벽을 쌓고 건너는 다리도 디딤돌로 하여 운치가 좋다.


세계인이 벤치마킹은 물론이고 카메라를 연신 들어 대면서 감탄을 연발한다. 이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정치 수준이 낮아서 그렇지 이제 우리나라는 의식수준이 선진국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서울은 한강과 청계천 그리고 북한산과 관악산이 지근의 거리에 있다. 남산의 팔각정과 타워도 늘 시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청계천은 사계절 그 모습을 달리한다. 천만 서울시민의 휴식처로 자랑할 만한 청계천이다. 오물 구덩이가 관광명소로 탈바꿈한 청계천이다.


마치 불구부정(不拘不淨)이 없다는 듯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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