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정(시인)시는 예술이다. 예술이라는 장르는 그 어떤 예술이든 감동이 빠지면 시체가 된다. 시류에 휩쓸리면서 튀어 오르려 한다고 튀어 오르는 건 아니다!
시 문학계에서도 독창성을 강조하다 보니, 독자뿐 아니라 전문가도 해석이 안 될 시를 쓰는 사람들이 한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평론가들은 그 글을 놓고, 이쪽으로 찍어보고, 저쪽으로 찧고, 빻고 하면서 해설을 해 보겠다고 매달렸다.
예술은 누가 해설을 하지 않아도 감동이 저절로 다가와서 독자와 정서적 소통이 되어야 좋은 글이고,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일단 너무 어려워서 소통이 안 되면 설득력이 떨어진 글인 것은 틀림이 없다. 독자와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너무 먼 비유를 가져와서 (잘못된 비유) 설득력에 실패한 글이다.
이런 글은 일본강점기에 조국의 독립 투쟁을 글로 써야 할 때, 속내를 에둘러 많이 감추어야 잡혀가지 않았고, 감옥으로 비밀 편지를 보낼 때도 일단 암호화해야 좋았다. 잡히지 않아야 하고, 잡히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있어야 하니까. 또 독재성이 강한 나라에 살면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쓸 때도 암호화해야 했다. 까딱하면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니까!
사랑 시 역시 쑥스러워서 비유를 많이 끌어 오기도 하고, 어려운 비유로 끌고 가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서 이렇게 내용이 지나치게 감춰진 시가 튀어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젊은 시인들은 괜스레 시류를 타 보겠다고, 자신도 자기 글 해설을 못 하고, 수십 년 문학을 지도해 온 전문가도 몰라볼 난해한 시에 저급하게 접근해서, 감동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걸 써서, 독자를 당황하게 하고, 마치 독자가 무식꾼이거나, 둔탁한 사람같이 몰아가는 해괴한 시가 버젓이 신춘문예 좌판대에 해마다 당선작이라면서 뛰어오르고, 그 시인들은 이름을 잃고, 문단에서 슬그머니 사라져 갔다. 그런 세월이 너무 길어지면서부터 시를 읽는 독자들이 자꾸만 사라져 갔다.
“시는 너무 어려워, 시 보는 눈이 난 없어, ”
“시는 시인의 혼잣말이잖아, 시인들은 머리가 다 이상해. ”
“폐인 수준으로 술을 말로 먹고, 담배 골초로 피워야 시인 아닌가? ”
“시인이 어찌 술도 못 먹나? ”
이렇게 터무니없는 인간 낙오자가 되어야 시인이라는 인식도 누가 만들어갔을까? 시인들 스스로 이렇게 낙인찍어 갔던 일은 없었는가?
진짜 시인은 세상에서 낙오된 외톨이이거나, 세상 밖으로 밀려난 삼류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감히 흉내조차 못 낼 언어의 달인, 천재들만이, 제대로 된 시를 세상에 남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남들이 어려운 시를 자랑스럽게 쫓아가도, 독자와 함께 공감하고 함께 가는 방향을 선택했던 시인들이 베스트셀러 시인이 되었다. 단, 서점에서 잘 팔리는 시집들은 문학적 수준에서 볼 때, 초보 단계에서 머물고, 유치한 평가를 받는 시가 대부분이었다. 시의 모양을 대략 갖추었더라도 깊이가 떨어지거나, 소년 소녀들이 연애편지에 인용하기 좋을 그 정도의 글이 베스트셀러 시의 주류였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럼 그런 얄팍한 시가 팔리는 이유는 독자의 눈높이에선 이것이 더 맞아 떨어진 것이다. 독자의 시각에선 내용이 쉽게 다가오고, 이해, 소통, 공감이 잘 되었기 때문이다. 독자의 가려운 데를 대신 긁어 주는 글들, 대변해 주는 말들, 자신이 원하던 말들이 거기에 시집 한 권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시집을 보면서 느끼는 아쉬움이 있었다. 시 한 편을 쓰면서, 조금만 더 시간을 투자해서 쓰고, 조금만 더 신중하게 깊이를 더했더라면 독자도 좋아하고, 문학적 가치와 수준을 올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 부분은 말로는 쉽지만 쉽지 않고, 그런 작가를 찾아보기도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시인은 왜 찾아보기 어려운가? 이를테면 비유의 달인이 되지 못하여 남들이 다 평상어로 쓰는 진부한 표현, 관념적 언어로 끝까지 시를 끌고 가고 있거나, 수필을 시로 줄이거나 승화 시키지 못하여 수필시라는 말로 발표하거나, 좋은 시를 쓰는 문학적 이론이 자신의 머리에 새겨지지 않았거나, 마치 쫓기듯 문단의 난해한 시류를 쫓아가야만 자기가 인정받는다고 하는 착각병에 단단히 걸려 있거나 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도 끝까지 독자가 공감하고 인정하되, 문학적 수준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시를 쓰도록 선배나 교수들은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기도를 해 본다. 시를 쓰려는 신진들이 시의 예술의 큰 틀을 너무 벗어나지 말고, 자기의 역량을 펼쳐갔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 보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시간과 자기만의 뚝심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약 20년 동안 해마다 우리나라 문단의 가장 대단한 문호들만이 대학 수능 시험 필적 확인 문구에 시 한 줄이 올라갔다. 대학 입시 시험을 치는 동안 매시간 시험지마다 선택된 시인의 시 한 줄을 자필로 써야 한다. 대리 시험을 방지하기 위한 자필 확인 용이다. 선정하는 기준이 정해져 있고, 쥐도 새도 모르게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그 문구를 출제위원들이 엄정하게 각자 골라 와서 회의하여, 선정된 그 중에서 다시 심사하여 가장 좋은 시로 결정된다. 한 줄의 문장만 보는 것도 아니고, 한 편의 시만 보는 것도 아니고, 시집 전체와 시인의 이미지도 문제도 없는 사람인지 같이 보게 된다.
그곳에 등단 7년 만에 낸 곽의영 시인(대구 달성)의 첫 시집 첫 페이지에 실린 시가 2025년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시류를 쫓아 난해한 시를 썼다면 과연 가능했는가? 절대 아니다. 곽의영 시인의 시집 한 권 전체를 보면 너무 어려워 이해가 안 되는 시는 한 편도 없다. 그 시에 알맞은 비유와 은유, 상징으로, 작품들로 독자와 충분히 함께 갈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물론 시집 전체가 몽땅 다 너무나 훌륭하여 교과서처럼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의 시는 시류에 휩쓸려 가지 않고, 독자와 함께 간다는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랬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꼭 기억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시 정신을 가지고 나아갈 때 기라성 같은 화려한 선배를 제키고, 이력이나, 등단지나, 학력, 경륜...그 무엇에 영향받지 않고, 반드시 작품 하나로 인정받는 날이 있다는 것을, 최근 들어서 확실하게 증명한 셈이다.
전쟁터에서 죽고자 나아가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가 죽듯, 문학하는 사람의 자세도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