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11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4800선을 돌파, 시가총액 4000조 원 시대를 열었다. 사상 최고치 경신이라는 화려한 수치만 보면 한국 자본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이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 경제의 뿌리 깊은 불균형과 취약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위태로운 지점은 ‘반도체 편중’ 심화다. 이번 랠리는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거대 공룡들의 질주 결과다. 특정 업종, 특히 대외 변수에 민감한 반도체가 시장 전체를 좌우하는 구조는 ‘독(毒)이 든 성배’와 같다. 글로벌 업황이나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라 4000조 원의 공든 탑은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지수의 고공행진과 괴리된 실물 경제의 침체는 ‘풍요 속의 빈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출 대기업들이 최대 실적을 갈아 치우며 지수를 견인하는 동안, 내수 시장은 고물가와 고금리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자영업자의 폐업이 속출하고 가계 부채가 임계치에 다다른 상황에서, 증시만의 ‘나 홀로 파티’는 경제 주체 간의 양극화와 박탈감을 심화시킬 뿐이다.
지배구조 개선의 부재 역시 뼈아픈 대목이다. 시장의 덩치는 커졌지만, 불투명한 거버넌스와 인색한 주주 환원이라는 고질병은 여전하다. 당국이 ‘밸류업’을 외치고 있음에도 대주주 중심의 의사결정과 쪼개기 상장 같은 편법적 행태가 반복되는 것은 시장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갉아먹는 행위다. 글로벌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낙후된 운영 방식이 계속된다면 코스피는 결코 건전한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제는 시총 4000조라는 숫자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체질 개선 없는 급격한 지수 상승은 성장이 아니라 부풀려진 위기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금융 당국은 외형 확장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소수 대기업에 의존하는 구조를 혁파하고 소액 주주를 보호할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내실 없는 팽창은 결국 더 큰 거품의 붕괴를 불러올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