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필(스트라드악기사 대표)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이 희생된 동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닭’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와 돼지 양과 물고기 수많은 생명들이 인간의 식탁을 지탱해 왔지만 생산량과 소비량 번식 속도 전 세계적 보급성을 모두 고려하면 닭만큼 인간과 밀착된 동물은 없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소비되는 닭의 수는 약 700억 마리, 돼지는 15억 마리 소는 3억 마리 남짓이다. 숫자만 놓고 봐도 닭이 감당해온 희생의 무게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닭은 고기만 내어주는 존재가 아니다. 매일같이 인간에게 ‘계란’이라는 완전식품을 공급한다. 전쟁과 기근 가난과 재난의 한복판에서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단백질을 제공해 준 존재다. 인류가 굶주림과 싸울 때마다 생존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킨 것은 언제나 닭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닭에게 감사한 마음 가진 적이 있었을까. 그저 태어나고 알을 낳고 인간의 식탁에 올랐다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인간 문명의 그림자 속에서 가장 묵묵히 자신을 내어준 존재 가 닭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쯤 닭에게 감사하는 날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9월 9일 ‘닭의 날’.
아홉은 생명과 완성을 뜻하는 숫자다. 두 번의 아홉은 ‘생명 위의 생명’ ‘희생 위의 번영’을 상징한다. 그날만큼은 닭을 먹기 전에 한 번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이것은 종교도 아니고 윤리를 강요하는 일도 아니다. 그저 인간이 자연 앞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닭날은 소비를 부추기는 날이 아니라 희생을 기억하는 날. 아이들에게 생명의 순환을 가르치고 식탁 위 한 끼가 얼마나 무거운 생명의 대가인지를 알리는 날.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존재임을 다시 생각하는 날을 정하면 어떨까.
닭은 인간을 살렸다. 이제 인간이 닭을 기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