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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 칼럼] 보리타작 하던 모습이 오롯이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6-01-08 22:55:53
  • 수정 2026-01-09 01: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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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칼럼니스트. 박약회 운영위원)

증시 격언에 밀짚모자는 겨울에 사 두라고 한다. 당연히 털 옷은 여름에 사라는 얘기다. 훨씬 싸기 때문이다. 오래 옆으로 기고 있는 주식을 서서 때를 기다리라는 의미다.


주식은 타이밍의 예술이라 한다. "시세는 시세에게 물어 보라"고 하지만 시세는 말이 없다.


휴지 기간이 길수록 주가는 장대처럼 솟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겨울이지만 한여름의 보리 타작하는 모습을 아련히 떠 올려 보고 싶다. 5천년 가난은 보리와 좁쌀로 허기를 겨우 면한 민족이다.


고개 가운데 봉정암 깔딱 고개보다 넘기 힘든 보릿고개였다. 지금은 보리밭 축제가 여러 군데서 열리는 세상이다.


보리피리, 깜부기, 맥주, 보리밥과 풋고추, 보리떡 등은 중년의 나이라면 추억을 회상시키게 하는 용어들이다.


보리밭에서 사랑을 나누었다는 말은 소설 속에 등장한다. 가곡 '보리밭'은 언제 들어도 정겨운 노래다.


마당에서 보리타작을 할 때는 무진 더운 때이다. 도리깨로 장단을 맞추어야 한다. 밀주가 금지된 시절 세무서에서 조사가 나오면 누룩은 보리짚 가리 속에 감추었다.


여치집도 보릿짚으로 만들어서 관찰했는데 정오만 되면 사이렌도 울고 여치도 울었다.


디딜방아를 찧을 때 곡식을 뒤적여야 한다. 누나와 나는 방아를 찧는데 툭하면 다리가 아프다면서 자리를 바꾸었다. 누나는 한번도 내색을 않고 응해 주었다.


남자라고 유세를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소싯적 아련한 추억인데 도리깨는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밀짚모자는 밀짚(보리짚도 가능)으로 만들고 볏짚으로는 가마니나 산태미(광주리의 방언)를 만든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다.


<온양민속박물관>에 가면 안동의 많은 추억거리를 볼 수가 있다. 창설자 김원대 회장이 경북인으로 계몽사를 창립하기도 했다.


이태 전에 마음먹고 갔었는데 수리 중이라 공치고 온 적이 있다. 올해는 꼭 가 볼 생각이다. 느리지만 전철이 온양온천역까지 간다.


다듬이질, 보리타작 장단, 벼루로 먹갈기, 디딜방이 찧기는 우리 민족의 세밀한 정서를 이어오게 하였다. 반도체가 꽃피우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그립다. 가난했지만 정이 넘쳤던 그 시절이 푸근해서 그런지 자꾸만 회상이 된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보리타작이 어제의 일만 같다.


까끄레기(바시랭이의 방언) 때문에 등목을 하여 주시면 필자도 아버지 등에 찬물로 등물을 해 드렸다. 시절 인연으로 벌써 반백의 머리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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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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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1-10 06:32:20

    주식 격언에서 시작해 보리타작과 보릿고개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글의 흐름이 참 인상 깊습니다.
    가난했던 시절의 노동과 가족의 정, 그리고 민족의 정서가 담담하게 녹아 있어 오래 여운이 남습니다.
    지금의 풍요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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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1-09 15:38:44

    시계가 귀했던 시절
    사이렌이 울리면
    점심시간이구나 했지요
    그래봤자 점심한끼 굶는건
    허다했던 시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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