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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 칼럼] 침묵의 시간이 너무 길면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5-12-18 20:50:14
  • 수정 2025-12-19 00: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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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칼럼니스트.박약회 운영위원)흔히 하는 말로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고 한다. 이는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할 경우 발생하는 실수에 대한 경고의 의미일 것이다.


당연히 좋은 말은 많이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세계 4대 성인은 일생을 말로 살았다.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숱한 말들이 성서, 불경, 쿠란 등으로 엮어졌다.


침묵의 시간이 길었던 부처님은 역설적으로 8만 4천 경을 남기셨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많은 말들을 제자들이 엮어서 경전으로 집대성 한 것이 불경이다.


불경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경전이 여시아문(如始我問)으로 시작된다. 


여시아문(如始我問)은 "부처님께 이렇게 들었다"(Thus have I heard at one time)는 의미다. 여기서 아(我)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난존자(阿難尊者)를 말한다. 


부처님의 사촌 동생인 그는 머리도 좋았고 기억력도 특출했다. 또 20년을 모셨으니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듣고 알고 있는 제일의 제자였다.


말이 없는 사람은 사실 두려운 존재로 보아야 한다. 


필자는 늘 말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말을 시키는 버릇이 있다. 정말 논리 있게 말을 잘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대체로 명 강사는 침묵을 강요하면 병이 생긴다고 한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박학다식 하고 재미있게 분위기를 끌고 간다.


말의 위력은 대단하다. 말은 발이 없어도 천리를 간다. 따라서 설화(舌禍)는 무섭기 짝이 없다. 


식물이 말은 못하지만 알아 듣는다 하니 신비롭다. 동물 세계의 의사소통에 대한 해독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쓸모 있고 유익한 언어의 사용이 불가피 하지 않을까 싶다.


부부 사이에도 언어의 격(格)이 필요한데 살다가 보면 격이 사라져 버리니 여간 안타깝지 않다.


부부는 무언의 사이가 아니다. 특히 부부간 밤의 언어가 묵언(默言) 수행과 같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다.


따라서 밤의 표현은 침묵보다는 짐승 같은 발설(發說)이 좋다는 데 동의한다. 묘하게도 잠자리의 언어(?)는 세계인의 공통이라 한다.


아무튼 침묵은 짧게 그리고 가급적 말도 길지 않게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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