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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제의 무속이야기 ⑯ 무당집 깃발의 유래와 의미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5-06-27 17: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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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신당을 꾸미고 집 앞에 긴 대나무에다 붉은 천과 흰 천을 매달아 세운다. 이 깃발은 한웅천왕시절에 하늘에 제사 지내는 장소인 소도(蘇塗) 가운데 모(旄)라는 깃발을 세운 데서 유래되었다.

 

<한단고기/단군세기>에 "11세 도해단군 경인원년(BC1891년)에, 오가에 명을 내려 열두 명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골라 국선(國仙)의 소도(蘇塗)를 설치케 하셨다. 많은 박달나무를 둘러 심은 후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한웅의 상(象)으로 모시고 여기에 제사 지내며 웅상(雄常)이라 이름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웅상의 그림은 집안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 장전 1호에 나타나 있다. 

 

또 기록하기를 "무리를 지어 노래하며 춤추며 술 마시기를 밤낮 쉴 사이 없이 한다. 그 춤은 수십 인이 함께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구르며 몸을 낮췄다 높였다 하며 손발이 서로 장단에 맞춘다. 귀신을 믿으며 국읍으로 각각 한 사람씩을 세워 천신에 제사 지내는 것을 주관케 한다. 이를 이름 지어 천군이라 한다. 또 여러 나라엔 각각 특별한 마을이 있는데 이를 소도라 이름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 북을 매어 달고 귀신을 섬긴다"라는 기록 외 여러 곳에서 웅상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무당집에 세우는 깃발은 바로 웅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웅천왕시절 소도에서 제사를 지내고, 백성에게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며 천제를 올린다. 또한 소도에 서면 언제나 참전계경이란 계(戒)가 있어 충 ․ 효 ․ 신 ․ 용 ․ 인 오상의 도를 닦았다.

또한 하늘에 제를 올리는 언덕을 구(丘)라고 하였다. 구(丘)는 앞을 높이고 뒤를 낮게 하여 모를 꽂는다고 하였다. 구는 나라의 중심이 되는 땅을 말하는데 14대 한웅천왕인 치우천왕이 세운 나라가 청구이다. 청구의 중심에 세웠던 깃발이 모(旄)인 것이다.

   

모를 불교에서는 당(幢)이라고 부른다. 오래된 고찰을 가보면 반드시 절 마당에 높은 철 기둥을 세워진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당간지주다. 당간지주가 높을 수록 그 절의 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당간지주는 불교와 상관이 없는 한웅천왕시절 하늘을 숭상하는 성역에 세운 소도가 변형된 것이다.

   

<강희자전>에 굿을 할 때 반드시 모(旄)를 꽂고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旄旄牛尾 舞者所持以指麾이란 기록이 있다. 

이 말은 모는 희고 털이 긴 소의 꼬리다. 춤을 추는 자가 쥐고서 흔든다는 것으로 무당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모우(旄牛)라는 털이 긴 소의 꼬리를 쥐고 흔들며 춤을 추었다는 것으로 오늘날 굿의 형태이다. 

   

또 土地高者曰丘 因高以事天 高於地上이란 기록도 있다. 

"땅이 높은 것을 구丘라고 한다. 높으므로 하늘을 섬기는 일을 한다. 고로 땅 위에 세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청구의 높은 언덕에서 하늘에 제를 지냈다는 뜻이다. 

 

 그리고 因下以事地 故於澤中 기록은."언덕을 낮게 하므로 땅을 섬기는 일을 한다. 고로 못의 한가운데서 하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언덕이 높은 곳에서는 하늘에 제를 지내고, 못 가운데 언덕이 낮은 곳에서는 땅에 제를 지낸다는 말이다. 

   

 이어서 丘非人爲之曰丘 丘前高後下旄 

 "구는 사람을 위한 언덕이 아닌 것을 구라고 한다. 언덕은 앞이 높고 뒤가 낮은데 모를 꽂는다"

이것은 그 당시 제사를 지낼 때는 반드시 모(旄)를 혈구에 꽂았다는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이때 꽂은 모, 즉 깃발이 변형되어 지금 무당집 앞에 꽂혀있다. 그러면 무당집은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는, 즉 굿을 하는 신성한 장소라는 뜻이다. 한웅천왕 시절 때부터 천제를 지내는 신성한 곳인 소도라는 표시이다.

   

아직도 현존하는 무당집의 깃발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고려도경/民居>에 송나라 서긍이 사신으로 기록한 것을 살펴보면 장대를 세우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예전에 전하기를 “창우들이 사는 집은 긴 장대(대나무)를 세워 일반 백성의 집과 구별한다” 하였는데, 지금 들으니 그렇지 않다. 대개 그 풍속이 귀신에게 음사하니 역시 압승하거나 기양(祈禳)하는 도구일 뿐이다.

   

이 기록으로 웅상을 시작으로 모기를 거쳐 신성한 곳이란 의미로 고려시대에도 장대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920년대 무속을 탄압할 때 일본인 고미네(小峯源作)가 숭신인조합(崇神人組合)이란 무속단체를 조직하면서 조직원을 표시하기 위하여 장대에 적청백(赤靑白)의 포를 달았다고 여겨진다. 이 깃발을 다는 이유는 숭신인조합 설립 목적에도 나와 있듯이 무속 행위의 풍속을 개선하고 타락한 무속을 교정하며 무업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있었다.

 

그 당시 무속 행위 특히 굿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있었고 주재소에 신고 후 신고필증을 장구에 달아 놓고 굿을 하였던 시절이라, 이 깃발을 단 집은 숭신인조합원으로 작은 편리를 봐달라는 의미로 달지 않았나 생각한다. 

   

현재 무당들 사이에는 깃발 색깔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청색은 굿을 하는 신, 흰색은 굿을 하지 못하는 신, 붉은색은 재수를 준다는 색이라는 말도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고 있다. 이렇게 멋대로 해석하니 무속은 미신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깃발의 색은 자연을 바탕으로 해석해야 한다.

붉은색은 태양으로 양(陽), 푸른색은 달로써 음(陰), 흰색은 금성, 즉 별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월성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음양의 조화를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티벳 등에서는 파란색은 하늘, 노란색은 땅, 빨간색은 불, 흰색은 구름, 초록색은 바다를 상징한다. 몽골의 다르핫족 샤먼들은 붉은색은 생명, 흰색은 선한 신 또는 일, 파란색은 하늘에 기도를, 초록색은 땅과 물의 신, 황색은 태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렇게 깃발을 세우는 이유는 일월성신 또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이지만 외관상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이상한 깃발을 세우는 대신 솟대를 세우는 것이 삼신신앙을 이어가는 무당에게는 더욱 성스러운 일이며 무교의 정체성을 알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듯 소도에 세운 모가 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 무당집 앞에 대나무에 걸린 천 조각으로 변형이 되었지만, 그 숭고한 뜻은 알고 세워야 한다. 이 깃발을 다는 순간 무당집은 일반 사람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백성들을 교화하고 오상의 계를 닦도록 하는 아주 중요하고도 신성한 소도의 성격을 가지는 중요한 곳이 된다. 

   

무당들이 모(旄)기에서 시작된 깃발의 유래와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스스로 반성하여 오계의 도를 닦고 언행에서 모범을 보이면 무당집도 성당이나 사찰과 같이 성역화 된 장소로, 민족종교의 사제로서 나라의 중심이 되는 날이 올 거라고 굳게 믿는다. 일제강점기 당시 행해진 일본식 깃발을 세우지 말고 솟대를 세우는 것이, 삼신신앙을 이어가는 무당에게 더욱 성스러운 일이며 무당의 정체성을 알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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