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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국 칼럼] 생주이멸(生住異滅)에 대하여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5-06-25 09: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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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生老病死)'나 '성주괴공(成住壞空)'은 자주 접하는 사자성어다.


그러나 '생주이멸(生住異滅)'은 마음에 관한 것으로 쉽게 접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을 알아차리기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마음은 우주가 생성되기 전에 이미 있었다고 주장을 하고 싶다. 마치 꽃의 아름다움이 있기 전에 이미 색(色)이 있었다는 이치와 같다. 


마음은 부처님께서 <능엄경>에서 자세히 설하고 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난에게 마음을 깨치게 하는 내용이다. 아난은 부처님의 4촌 동생이다.


그리고 청담 스님께서는 마음에 관한 공부를 평생 동안 하신 분이시다. 마음도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인간은 육체적으로는 태어남(生)으로 시작하여 죽음(死)으로 마감한다. 


졸업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듯 죽음도 끝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육도(六道)를 윤회(輪回) 하는 인간이기에 어디에서 다시 태어날지는 업보에 따를 것이다. 다만 천상이나 서방정토에 갈 수 있다면 이는 종교적인 문제이다.


생로병사의 노(老)와 병(病)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단순한 과정(process)일 뿐이다. 시작과 끝인 시종(始終)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것이 인간세상이다.


늙어야만 병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유아사망도 있고 소아 당뇨도 많은 세상이다. 생로병사의 순서대로 산다는 것은 사실 행복한 삶이다.


인간이 치르는 잔병치레는 의외로 많다. 특히 병원을 마치 공원을 산책하듯 자주 드나드는 우리 민족이다.


나이 들어 며칠만 병상에서 아프다가 저승으로 간다면 소위 오복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일 것이다. 요즘은 '웰다잉'이라 부른다.


늙음을 서러워 말고 행복하게 여기는 인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백발이나 주름을 사랑하는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생주이멸'은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도 생겨서 존재하다가 멸하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흔히 가장 짧은 찰나(刹那)는 75분의 1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찰나는 겁(劫)과 통하는 시간이다.


<사랑도 찰나였다>는 어느 여류 시인의 시집 제목이다. 필자는 노인의 사랑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생주이멸'이란 마음으로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죽어도 좋아>나 최근 증가하고 있는 '노인의 재혼'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누구나 한 생을 소풍 마치고 귀천(歸天) 하는 길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지구에서의 삶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을 화두(話頭)로 삼으면서 일생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행히 조화주는 불행하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뇌는 속는다고 한다. 따라서 틈만 나면 '나는 행복하다'를 반복 하라는 것이 고(故) 이용태 박사님의 ''행복아카데미 강좌''의 백미(白眉)인 것이다.


결국 이 순간(just-now)이 가장 소중하다고 하니 지금 바로 행복을 느끼면서 지내도록 습관을 길러 나가는 일상(日常)이 되도록 애썼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경국(칼럼니스트. 사단법인 박약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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